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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싶은 '비문학'/과열(토마스 힐란드 에릭슨 著)

[책리뷰] '과열(Overheating)' 종합 감상평

Geronimo 2021. 8. 19. 00:01

과열(Overheating) - 폭주하는 세계화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 토마스 힐린드 에릭슨(지은이) | 나눔의집

<차례>
  1. 과잉된 세계
  2. 개념 용어 사전
  3. 에너지
  4. 이동성
  5. 도시
  6. 쓰레기
  7. 정보과잉
  8. 스케일의 충돌 : 과열된 세계를 이해하는 방법


이 책을 끝까지 읽는 데에 긴 시간이 걸렸다. 약 330페이지의 분량을 다 읽는데에 2주 정도의 시간이 걸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 자신의 의지가 부족했던 것과 동시에 책의 내용이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책이 유익했다는 생각보다, 지지부진하고 끝이 안 보이던 숙제를 끝마쳐 홀가분한 기분이 더 크다.

저자인 토마스 힐란드 에릭슨(Thomas Hylland Eriksen)은 유럽 연구위원회(European Research Council; ERC)의 후원으로 진행된 연구 프로젝트 '과열 : 세계화의 세 가지 위기'의 서론으로 이 책 「과열(Overheating)」을 펴냈다. 「과열(Overheating)」을 통해 그는 인류학의 근시안적이고 편항된 시각을 극복하고자 노력했으며,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의 대립을 전제로 삼아 현대 세계를 포괄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저자는 세계화로 인해 발생한 여러 위기가 누군가의 악행, 이기적인 행동 등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이 책에서 강조하는 스케일을 바꿔서 문제를 살펴보면 얼마나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세계화의 결과로 발생한 여러 문제가 크게 환경, 경제, 정체성의 세 가지 영역에서 일어난다고 바라보았으며, 그 위기를 지각하고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각 지역마다 다르게 이루어짐을 인정한다.

구체적으로 1장 '과잉된 세계'에서는 그저 긍정적일줄로만 알았던 세계화가 만들어낸 여러 문제를 언급하며, 그동안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너무 거대한 관점에서 이루어지거나 또는 지엽적인 부분에 제한되어 올바른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음을 비판한다. 저자는 지역적 조사와 더불어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맥락적 지식이 모두 요구됨을 강조하며, 2장 '개념 용어 사전'에서 과열된 세계를 분석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여러 용어를 정의하고 있다. 이후 3장부터 7장까지의 약 200페이지는 과열된 세계의 특징이자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사용, 인간의 이동성, 도시의 성장, 쓰레기, 정보 과잉과 같은 물질적 차원의 문제와 내재된 모순을 스케일이 충돌하는 관점에서 살펴본다.

이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8장 '스케일의 충돌'에서 저자는 과열된 세계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하나의 도덕적 공동체를 형성해야하며, 그 속에서 문화적, 정치적 경계를 넘은 대화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화로 인해 우리의 인식적 스케일이 확대되고 글로벌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음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한다.

세계화를 비롯한 급격한 변화의 부작용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 우리는 흔히 오늘날 세계 경제를 이루는 핵심 열쇠이자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다. 물론 대규모 실업, 경제 위기, 화석 연료의 과다한 사용으로 인한 기후 변화 등은 결코 신자유주의와 같은 거대 시스템과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그 비난의 대상이 반드시 관념적 실체 또는 개인과 연관이 없는 사회구조가 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저자의 지적은 날카롭다.

책에서 제기한 문제 의식에 비해 결론은 다소 뻔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지속가능성과 기후변화, 표준화와 정체성 등 세계화가 만들어낸 모순과 이중구속을 각각 다른 스케일에서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흥미로웠다. 대놓고 저자가 강조한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저자는 「과열(Overheating)」에서 글로벌한 변화와 모순 속에서 지역을 우선시하고 있다. 조금 더 날카롭게 보면 저자는 현대 세계를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한편 알라딘이나 예스24와 같은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해보면 세일즈포인트가 다른 책들에 비해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책이 다루는 주제가 어렵고, 저자가 대중에게 친숙하지 않다는 점이 책의 판매량이 저조하다는 사실과 연결되는 것 같다.

더불어 「과열(Overheating)」을 읽기 전에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Homo Deus)」를 읽어서인지, 글의 흐름이 조금 매끄럽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번역이 깔끔하지 않은 부분도 더러 있고, 오탈자도 다른 책들에 비해 많다. 또한 문장의 이어짐도 깔끔하지 않은 부분도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A를 설명하면 그 뒤에 A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A1, A2 구조가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으로 바람직한데, 이 책은 A 뒤에 갑자기 B를 설명하고 다시 A1, A2를 기술하는 방식이 많이 보인다. 이 방식이 저자의 스타일인지 아니면 번역 과정에서 발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비문학 책들에 비해 문장이나 문단의 흐름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과열(Overheating)」은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에 한 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저자의 다른 책이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것은 다소 아쉽다. 아마 「과열(Overheating)」이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았더라면 후속작도 금새 출간되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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