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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딩씨 마을의 꿈(옌롄커 著) 감상평 본문

기록하고 싶은 '문학'/중국소설

[책리뷰] 딩씨 마을의 꿈(옌롄커 著) 감상평

Geronimo 2021. 8. 26. 20:14

ㅇ 책 제목 :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ㅇ 지은이 : 옌롄커(閻連科)
ㅇ 출판사 : 자음과모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 이어, 옌롄커의 작품을 하나 더 읽어보기로 했다. 하필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는 옌롄커의 책이 한 권도 없어서,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여 다른 도서관의 책을 전달받았다.

제목이나 책 내용에 끌려서 「딩씨 마을의 꿈」을 고른 것은 아니었다. 당시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해서 받을 수 있는 책이 이것뿐이었다. 옌롄커의 작품을 국내에 출간된 순서대로 읽고 싶은 욕심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느꼈던 옌롄커 작품의 매력을 잃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딩수이양은 딩씨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이다. 소박하지만 평화로운, 전형적인 농촌이었던 딩씨 마을은 주변의 다른 마을들이 국가가 추진하던 매혈 운동을 통해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결국 여유 있는 삶과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위해 딩씨 마을도 매혈에 동참하게 된다. 딩수이양의 아들 딩후이는 매혈을 통해 일종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였고, 본인이 직접 채혈소를 차리며 일종의 매혈 우두머리가 되어 부와 명예를 쌓게 된다.

하지만 딩후이 주도하에 이루어졌던 매혈은 알코올 솜과 주사기를 여러 번 사용하는 등 비위생적으로 이루어졌고, 결국 딩씨 마을 사람들은 열병이라 불리는 에이즈에 걸리게 된다. 열병으로 인해 한 사람씩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딩씨 마을 사람들은 열병의 전염성을 걱정하게 되었고, 이에 딩수이양이 일하던 딩씨 마을 초등학교에 열병 환자들이 모여 살기로 결정한다. 이후 학교를 비롯해 딩씨 마을에서 발생하는 사건과 그 이야기가 「딩씨 마을의 꿈」에 쓰여있다.

「딩씨 마을의 꿈」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다 결국 비극을 맞이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법을 택하는 딩후이의 모습도 있지만, 열병 환자를 모아둔 학교에서도 개인의 욕심을 채우려는 딩씨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 경제적 여유, 신체적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을 좇고, 타인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고 하는 소설 속 인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와중에 그런 걸 생각하냐......'라는 생각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에서 보았던 것처럼, 옌롄커는 인간의 본성 또는 어두운 면을 잘 묘사하는 작가라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소설 중간중간에 나오는 할아버지 딩수이양의 꿈에서는, 딩씨 마을에 신선한 꽃이 피고 땅 밑에는 황금이 맺힌다. 하지만 현실의 딩씨 마을은 점점 삭막해지고,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점점 소원해진다. 그래서 딩수이양의 꿈이 더 허황된 것처럼 느껴지고, 폐허로 변해가는 딩씨 마을의 모습이 더 참혹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삭막해지는 딩씨 마을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마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 딩수이양이기에 그 모습은 더욱 슬프게 보인다.

한편 「딩씨 마을의 꿈」은 독살당한 딩후이의 아들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소설을 중후반까지 읽었을 때도 옌롄커가 왜 전지적 시점이 아닌 딩후이의 아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조금 독특하긴 했지만 큰 차이점을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 후반부에 딩후이의 아들이 이야기에 등장하게 되면서, 왜 옌롄커가 이러한 선택을 했는지 조금은 추측해볼 수 있었다. 딩후이의 행동과 이를 바라보는 딩수이양의 감정 변화, 그리고 마지막 선택까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딩수이양이 지키던 작은 채소밭에 잡초가 나고 벌레가 찾아오지만, 딩씨 마을의 밝고 가능성 있는 미래보다는 삭막함, 슬픔, 고독이 더 크게 보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은 딩수이양이었다.


<짧은 감상평>
붉은 참깨처럼 팔뚝에 가득한 주사 자국만큼, 딩씨 마을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다. 포도 덩굴 같은 플라스틱 관과 혈액을 채운 병이 마을을 채워나갔지만, 반대로 딩씨 마을 사람들은 마치 개미 떼처럼,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죽어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권선징악의 결말이지만, 조금씩 비극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딩씨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운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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