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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물질의 물리학 : <4> 차가워야 양자답다 본문

기록하고 싶은 '비문학'/물질의 물리학(한정훈 著)

[책리뷰] 물질의 물리학 : <4> 차가워야 양자답다

Geronimo 2021. 4. 14. 17:45

물질의 물리학-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서 양자과학 시대 위상물질까지 | 한정훈(지은이) | 김영사


4장 '차가워야 양자답다'는 절대 영도라는 극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노력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로 얻어지는 결과물을 다루고 있다.

ㅇ 절대 영도(0K)의 개념
  - 책에서는 전자들이 더 이상 운동하지 않는 상태의 온도를 절대 영도(0K = -273.15℃)로 정의했다.
  -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절대 영도에서의 엔트로피의 값은 0이 된다.

ㅇ 절대 영도에 근접하기 위한 노력
  - 제임스 듀어(James Dewar)는 20K, 14K 근방에서 각각 액체 수소(1898년)와 고체 수소(1899년)를 얻었는데, 14K 근방에서도 헬륨 가스는 액화되지 않았다.
  - 오너스(Kamerlingh Onnes)는 '측정을 통한 지식(Door meten tot weten)'을 좌우명으로 삼아, 기체의 액화 현상을 실험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1908년 오너스와 그의 연구진은 4K 부근에서 소량의 액체 헬륨을 얻는 데 성공했다.
  - 이는 액체 헬륨 속에 어떤 물질을 넣으면 그 물질 역시 4K만큼 차가워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오너스는 절대 영도 근방까지 물질을 식힐 수 있는 절대 냉장고를 만들었다.

ㅇ 오너스의 절대 냉장고는 20세기 전반에 걸쳐 양자 물질의 비밀을 풀어내는 데 필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 뉴턴이 진공과 유사한 환경에서 자신의 이론을 검증한 것처럼, 현실에서 양자 물질의 성질을 관찰하고 싶다면 온도를 극한 환경인 극저온으로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절대 영도에 가까워질수록 양자 물질의 속성이 나타난다.
  - 본래 물질의 상태는 여러 파동 함수의 조합으로 표현되나, 절대 영도에 근접하면 물질의 성질(물성)이 하나의 파동 함수로 기술된다(decoherent -> coherent).
  - 절대 영도에서 묘사된 물질의 파동함수는 높은 온도에서 존재하던 함수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지만, 아예 질적으로 다른 함수로 표현되기도 한다. 임계온도(Critical temperature)보다 물질의 온도가 내려가게 되면 그 물질의 성질은 새로운 성격을 지닌 파동함수의 등장으로 인해 바뀌며, 우리는 임계 온도보다 높은 온도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물성을 관찰할 수 있다.


ㅇ 초전도체의 발견
  - 1911년 오너스의 연구진은 4.2K 근방에서 수은의 저항이 0에 가까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 일반적으로 금속의 저항은 온도의 영향을 받는데, 온도가 낮아지면서 이에 비례하여 감소하던 수은의 저항이 4K 근방에서는 0에 가까운 값으로 급격하게 감소했다.
  - 이는 오너스의 연구진이 금속의 초전도성을 발견했음을 의미하며, 금속이 낮은 온도에서 초전도체가 되는 이유는 60여 년 후인 1972년 BCS 이론으로 증명되었다. BCS 이론은 극저온에서 기술되는 파동함수가 무엇인지 밝혀낸 것이었다.

ㅇ 마이스너 효과와 질량의 근원
  - 1933년 마이스너(Walther Meissner)는 금속이 초전도체로 바뀌는 임계온도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자기장이 금속을 통과하지만, 임계온도보다 낮은 온도에서는 금속이 초전도체로 바뀌고 자기장은 초전도체를 비껴가는 현상을 발견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기장이 초전도체의 아주 얇은 껍질 부위까지만 침투한 것이며, 이는 오늘날 마이스너 효과(Meissner effect)라 불리는 초전도체의 또 다른 특성을 발견한 것이었다.
  - 필립 앤더슨(Philip Anderson)은 초전도체 내에서 전자기파가 거동하는 방식이 맥스웰 방정식이 아닌 약간 변형된 파동 방정식으로 서술됨을 파악함으로써 마이스너 효과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 이 변형된 파동 방정식에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데, 보통 금속을 통과하는 전자기파(광자)는 질량이 없는 입자 방정식에, 초전도체를 통과하는 전자기파는 질량이 있는 입자 방정식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본래 질량이 없는 입자였던 광자가 초전도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질량이 유한해짐을 의미한다.
  - 금속이 낮은 온도에서 초전도체가 되는 이유를 밝혔던 BCS 이론은 난부-골드스톤(Nambu-Goldstone) 상태 또는 입자라 불리는 것이 초전도체에 존재함을 시사했는데, 위 관점을 적용하면 초전도체 내부로 침투한 광자가 난부-골드스톤 입자를 만나 상호작용한 결과 질량이 생성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이는 물리학의 원초적 질문 중 하나인 '질량의 근원'과 상통하며, 이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면 전자,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기본 입자가 질량을 갖게 된 이유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났다.
  - 1964년 이론물리학자들은 앤더슨의 접근법에 영향을 받아, 자연에 존재하는 기본 입자들은 '힉스 입자(Higgs boson)'와 상호작용하여 질량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2012년 CERN에서 실험을 통해 힉스 입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우리는 질량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ㅇ 초액체의 발견
  - 1937년 카피차(Pyotr Kapitsa)는 4K 근방에서 한 번 액화된 헬륨이 2K 근처에서 물성이 다른 새로운 액체가 됨을 확인했다.
  - 레이던대학교의 연구진은 새롭게 발견된 이 액체 헬륨이 4K 근방에서 액화된 헬륨보다 열전도성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카피차는 초전도체 내에서 전류가 지속적으로 흐르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판단하여 새로운 액체를 초액체(superfluid)라 명명했다.
  - 일반 액체는 임의의 소용돌이 순환수 값(회전 속력이 커질수록 순환수 역시 커짐)을 가지지만, 초액체의 경우 순환수 값은 아무 값이나 될 수 없다. 1949년 온사게르(Lars Onsager)는 초액체 헬륨의 소용돌이 순환수가 \( \hbar / m \) 의 정수배로 양자화될 것으로 예측하였고, 초액체 상태가 하나의 파동함수로 기술된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는 수학적으로 증명 가능하다(이 때 \( \hbar \)는 플랑크 상수, \( m \)은 헬륨 원자 한 개의 질량).


4장까지 읽게 되면 책의 약 1/2 지점에 도달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4장은 책의 전반부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개념적으로만 가능한 상태로 여겨졌던 절대 영도에 근접하기 위한 오너스의 노력은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다소 생소한 개념인 초액체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어서 유익했다.

더불어 마이스너 효과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에서, 물리학의 원초적 질문인 '질량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뉴스나 기사를 통해 힉스 입자를 접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개념인지 그리고 물리학에서 힉스 입자가 왜 중요한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물리학에서의 질량은 마치 수학에서 등장하는 미지수 \( x \) 처럼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힉스 입자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질량의 근원을 해석하려는 물리학자들의 고뇌를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저자의 내용 구성 그리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능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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