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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물리학 : <2> 꼬인 원자 본문

기록하고 싶은 '비문학'/물질의 물리학(한정훈 著)

물질의 물리학 : <2> 꼬인 원자

Geronimo 2021. 4. 12. 22:52

물질의 물리학 - 고대 그리스의 4원소설에서 양자과학 시대 위상물질까지 | 한정훈(지은이) | 김영사


2장 '꼬인 원자'에서는 독특한 원자론을 소개한다. 다른 학자들의 발견 및 실험 결과와 일치하지 않아 오늘날 교과서에 등장하지 않지만, 해당 이론들은 위상수학적 양을 원자론과 결합하여 신선한 관점을 제시했다.

ㅇ 헬름홀츠(Herman Ludwig Ferdinand von Helmholtz)의 불변량에 대한 관찰
  - 헬름홀츠는 1858년 논문에서 마찰력이나 에너지 손실이 없는 이상적인 액체에 대하여, 거리와 속력의 곱으로 정의된 순환수(circulation)로 만들어진 소용돌이는 영원히 같은 순환수 값을 가져야 함을 증명했다.
  - 즉 순환수가 불변량이라는 주장인데, 불변량을 잘 해석하면 다양한 운동 현상이 하나의 일관된 원리에 따라 작동함을 알 수 있다.
  - 물리학자들은 순환수 같은 불변량을 차츰 위상수학적(topological)인 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며, 헬름홀츠의 증명은 어떤 물질의 상태를 순환수라는 위상수학적 불변량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보인 최초의 사례다.

ㅇ 원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은 헬름홀츠의 소용돌이에서 영향을 받아, 데모크리토스식 원자론에 맞설 새로운 원자론을 대담하게 제시했다. 그는 <소용돌이 원자에 관하여>라는 논문에서 원자가 소용돌이 고리 형태로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 현악기의 줄이 진동하며 소리를 내는 것처럼, 톰슨은 높은 온도의 기체가 빛을 내는 현상을 소용돌이 고리로 된 원자가 진동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기체별로 발광할 때의 색깔이 다른 것은 원자가 각자 다른 매듭 모양을 하고 있으니, 그 매듭이 떨리면서 내는 빛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 톰슨의 친구 테이트(Peter Tait)는 그에게 영향을 받아, 줄 하나를 꼬아서 만들 수 있는 매듭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테이트는 가장 간단한 원 모양의 매듭부터 시작해 매듭이 교차하는 횟수에 따라 만들어지는 매듭의 모양을 정리했는데, 매듭을 끊고 다시 잇는 절차가 없다면 이러한 매듭의 정체성(이름과 모양) 또한 위상수학적 성격을 지닌다.

ㅇ 위상 원자 이론의 몰락!?
  - 이후 다른 톰슨(J. J. Thomson)은 1897년 음극관 실험을 통해 원자보다 1천 배 이상 가볍고 음의 전하를 띤 입자를 발견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입자를 전자라 일컫는다.
  - 1911년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는 전자와 반대 부호를 가진 원자핵의 존재를 실험적으로 증명했고, 그의 제자 채드윅(James Chadwick)은 중성자의 존재를 증명했다.
  - 전자, 양성자, 중성자가 차례차례 발견되면서 원자가 다른 입자, 즉 전자, 중성자, 양성자로 구성된 복합체임이 밝혀졌고, 이에 선배 톰슨이 제안했던 위상수학적 소용돌이 원자 이론은 조금씩 잊혀갔다.
  - 이후 원자의 구조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아직 양성자, 중성자와 같은 핵자(nucleon)에 관한 연구는 미비한 상태였다. 1962년 토니 스컴(Tony Skyrme)은 3차원 양자장이 갖는 위상수학적 숫자를 바탕으로 양성자의 안정성을 설명한 '매듭 소립자 이론'을 제안했다. 원자가 안정적인 이유를 헬름헬츠가 발견한 소용돌이의 불변량에서 찾으려고 노력했던 톰슨과 비슷하게, 스컴은 양성자의 안정성을 위상수학적 양을 이용하여 수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것이었다.
  - 하지만 톰슨의 소용돌이 원자 이론이 후배 톰슨, 러더퍼드, 채드윅의 발견을 통해 무너진 것처럼, 스컴의 이론은 겔만(Murray Gell-Mann)이 1964년에 제안한 쿼크 이론을 통해 무력화되었다. 겔만의 쿼크 이론은 실험적 검증을 통해 오늘날 자연을 이해하는 표준모형의 일부가 되었다.
  - 결국 원자나 핵자보다 더 기본적인 입자인 전자와 쿼크의 안정성 문제가 남아있는데, 입자물리학에서는 이 기본 입자들의 안정성을 처음부터 주어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인다. 즉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봉인했다.


다른 책에서는 접하지 못한 새로운 내용을 2장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오늘날 통용되지 않는 이론을 소개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본래 한 가지 질문에 대해서 여러 가설을 세우고 그 가운데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 과학의 발전 방향이 아니겠는가. 정답이 하나뿐이라면 수많은 가설이 폐기되는 것 또한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2장은 톰슨과 스컴의 이론만큼 그 과정에서 사용된 위상수학적 접근법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각각 원자와 핵자의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위상수학을 사용했다. 사실 물리학과 수학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리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수학 방정식이 있고, 이 수학 방정식을 해석하면서 새로운 물리현상을 예측하거나 실험을 통해 발견하기도 한다. 과거에도 이러한 접근법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결과가 복잡한 것이 아니라 깔끔하게 떨어진다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나에게 위상수학은 어려운 과목이었다. 위상수학에서 불변량이 중요한 것도 알았고 이를 이용할 때의 이점도 알고 있었지만, 과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지금도 잘 이해하고 있지는 않지만 말이다. 위상수학과 물리학, 어떻게 보면 서로 동떨어진 개념처럼 보이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두 학문의 밀접한 관계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한편 저자가 염려한 것처럼, 필자는 운동방정식을 수학적으로 해석하여 물리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물리학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었다. 늦게나마 물리학을 지나치게 기계적으로 바라보았던 나의 자세를 반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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