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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의 서막 : <1> '앙시앵레짐'이란 무엇인가 본문

기록하고 싶은 '비문학'/대서사의 서막(주명철 著)

대서사의 서막 : <1> '앙시앵레짐'이란 무엇인가

Geronimo 2021. 3. 13. 03:54

책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솔직하게 밝히고 넘어가려 한다.

필자는 해당 책을 2017년 여름에 구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추측컨대 2017년 당시 어떠한 필요 또는 관심에 의해 프랑스혁명에 대해 서술한 책을 구입했을 것이다.

대다수의 인문학 또는 역사 도서의 성격상, 두꺼운 책의 두께와 내용의 심오함 때문에 접근하기가 그리고 읽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필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느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러한 생각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필자 역시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에 프랑스혁명에 대해 서술한 이 도서를 책꽂이에 장식용(?)으로 두고 외면하고 있다가, 최근에 와서 '지금 읽지 않으면 올해 내내 읽지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책의 내용이 재미있거나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빨리 읽고 해치우자라는 생각이 강했다.

우선 이 책의 저자는 서양 근대사를 전공한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의 명예교수다. 학계에서 그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필자가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명예교수라는 점 그리고 국내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해 책을 서술할 정도의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기에 책에는 양질의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만약 프랑스혁명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인터넷 서점 사이트 또는 오프라인 서점에서 프랑스혁명에 대한 책이 어느 정도 있는지 찾아보자. 의외로 프랑스혁명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 책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단순히 해외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저자가 열의를 보이며 프랑스혁명의 배경과 그 내용을 자세히 기술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프랑스혁명의 배경인 구체제(구제도, 앙시앵레짐)부터 1794년 7월 말의 테르미도르 반동까지의 사건을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이라는 연속물을 통해 다룰 것이라 밝혔다. 전체 10부작으로 구성된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는 저자가 정성을 들여 설명하고자 했던 프랑스혁명을 보다 친밀하게 느낄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10부작의 시작을 알리는 1권에서 저자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모습, 이른바 구체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1권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01. '앙시앵레짐' 이란 무엇인가
  02.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03. 루이 16세 즉위부터 전국 신분회 소집까지

이 글은 1권의 1부 <'앙시앵레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책 전체가 아니라 1부만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조금은 우습게 느껴지지만, 필자가 이 글을 남기는 주된 목적은 책의 요점을 정리하고 이를 남기려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혹은 다른 사람과 책의 내용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아직은 그 마음이 크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프랑스혁명 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 기존 루이 16세의 체제는 '앙시앵레짐(Ancien Régime)', 다시 말해 구(舊)체제였다. 구체제는 혁명의 결과로 탄생하는 새로운 체제와 비교되는 대상인 동시에, 역사가들 사이에서 불합리적이고 모순투성이인 체제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사람 혹은 세력이 당위성을 위해 구체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점을 감안하여, 저자는 앙시앵레짐이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혁명이 발생했다고 이해하는 목적론적 역사관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앙시앵레짐을 혁명가들이 거부한 것으로만 보아서는 안되며, 차라리 혁명을 낳고 변형 또는 폐지되거나 먼 훗날 부활하지만 당시 사정에 맞게 변질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다음으로 저자는 앙시앵레짐을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기술하고 있다.

ㅇ 지리적 측면
  - 혁명 이전 프랑스는 왕국 형태로, 절대군주 아래 하나의 국가로 통합된 형태가 아니었다.
  - 통일을 위한 사전 작업인 동시에 왕국 내에서 사람과 물자 등을 빠르게 유통시키기 위해, 프랑스 왕정은 도로망 건설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 물론 이 과정에서 하층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도로망 건설이 사람, 물자, 정보 등을 빠르게 유통시켜 프랑스의 발전과 연결되었다는 긍정적인 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ㅇ 정치적 측면
  - 9~10세기 이후 왕권이 약화되어, 프랑스에는 각 지방의 영주가 왕처럼 권력을 행세하는 봉건제도가 정착되었다.
  -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위크 카페가 왕으로 추대되었고, 이후 카페 왕조는 봉건제도, 결혼, 종교 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왕국을 넓혀나갔다.
  - 필리프 2세, 루이 9세, 필리프 4세는 지방 영주들의 최고 영주 역할인 왕으로서 왕국의 통일을 위해 힘썼으며, 국가 조직(사법제도, 행정 조직 등)을 정비함과 동시에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 특히 프랑수아 1세는 왕의 지위가 왕국 안에서 가장 우월하다는 것을 인식시켰다.
  - 종교전쟁 이후 왕권이 조금 약해지긴 했으나, 섭정과 내란으로부터 교훈을 얻은 루이 14세는 직접 통치를 실시하며 신의 대리인으로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이 때 실질적으로 절대군주정의 모습이 나타남)
  - 루이 15세 통치 시기에도 절대군주의 이미지는 강했으나, 사법적이고 정치적인 역할은 조금씩 의심받으며 절대군주의 의미와 상징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ㅇ 사회적 측면
  - 옛 프랑스의 신분 사회는 제1신분 종교인, 제2신분 귀족, 제3신분 평민으로 나뉘어 있었다.
  - 이러한 신분 제도는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핏줄로 결정되었고, 각자가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 유기체론적 성격이 강했다.
  - 그러나 이러한 장애는 관직 매매를 통한 귀족의 수 증가, 능력 있는 평민의 사회 진출, 인쇄 기술의 발달과 함께 사회 구성원 간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며 서서히 극복되는 모습을 띄었다.
  -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을 나눈 사회 구조와 현실 간의 괴리가 컸다.

ㅇ 문화적 측면
  - 중세 이후 르네상스 혁명이 있었지만, 왕을 비롯한 대다수의 생활은 종교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 왕은 자신이 가톨릭 교회의 맏아들임을 알리는 동시에 그의 권력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축성식이라는 행사를 이용했다.
  - 평민은 일상생활을 비롯하여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통과 의례가 가톨릭과 연결되어 있었다.
  - 하지만 계몽주의의 확산과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종교의 영향력은 차츰 약해지기 시작했다.



1부에서 저자는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의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수백 년 이상 여러 가지 요소가 뒤섞인 앙시앵레짐을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으며, 역사상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언급하며 이후의 이야기를 위한 도입부로서는 크게 흠을 잡을만한 부분이 없다고 느껴진다.

특히 1부의 초반부에는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앙시앵레짐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강한 주장이 담겨있다. 이와 함께 종교인, 귀족, 부르주아 대표가 모인 전국 신분회를 일본의 용어를 빌려 삼부회라고 일컫는 국내 학계에 대한 비판도 있다. 용어 하나하나에도 신경 쓰는 모습에서 저자가 얼마나 이 책에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2부에는 혁명 당시 프랑스를 통치하던 루이 16세와 그의 비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 있다. 기회가 된다면 2부에 대한 글도 쓰기 위해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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