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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채링크로스 84번지(헬렌 한프 著)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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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채링크로스 84번지(헬렌 한프 著)

Geronimo 2022. 2. 7. 19:04


ㅇ 책 제목
: 채링크로스 84번지 (84, Charing Cross Road)

ㅇ 지은이 : 헬렌 한프 (Helene Hanff)
ㅇ 출판사 : 궁리


솔직하게 언급하고 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채링크로스 84번지」는 내가 선호하는 분야의 책이 아니다. 책을 처음으로 받았던 시점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아도, 내가 직접 돈을 주고 이 책을 구매할 확률은 극히 낮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확률은 계속 낮은 값을 유지할 것이다. 책에 대한 나의 관심은 주로 외국 소설, 인문학, 과학 분야에 쏠려 있으며, 최근의 나는 중국 소설과 더불어 미래의 여러 가능성을 언급하는 미래학 분야에 적지 않는 흥미를 두고 있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권해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는 것은, 나에게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도 편지를 모아 펴낸 책이기에 읽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고, 책의 두께도 얇아서 부담도 없었다. 책의 주된 내용은 자신이 원하는 책을 구하려는 여성 화자와, 고객의 요구에 최대한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서점 주인과 직원들의 이야기이다. 이야기 속에서 '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체이며, 책을 읽는 동안에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고 좋게 포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나는 별 감흥이 없다. 오히려 책의 스토리와 상관없는 생각만 하게 된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드러난 열정과 마음, 이른바 감성적인 부분이 오늘날의 서점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우선 나는 회의적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의 생각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거듭될수록 기술은 발달하고 있으며, 오늘날 많은 사람은 편리함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일부 오프라인 서점과 중고 서점은 뉴트로적 요소를 공간에 녹여, 과거 또는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꿈꾸며 일종의 낭만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일부는 체계화된 시스템을 통해 실현되는 효율성보다, 개개인의 관심사와 취향을 중심에 둔 소통을 치열한 경쟁 속의 새로운 돌파구로 삼았다. 그러나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오늘날, 일부 서점이 행동으로 옮긴 새로운 시도가 당장 내일 구식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어떤 사람에게는 고객과 서점 사이의 인간적인 소통과 감성이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겠지만, 기업(서점)의 관점에서 감성에 중점을 둔 사업 모델은 안정적인 수익의 창출 그리고 효율적인 운영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일 확률이 높다. 여기에 더해 지극히 평범한 다수의 현대인은 과거와 비교해 더 계산적이며, 심지어 약삭빠르기까지 하다. 오프라인 서점에서 관심 있는 책을 간단히 훑어보고, 책의 실제 구매는 마일리지, 무료배송 등 각종 혜택을 주는 인터넷 서점에서 하는 사람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은 이미 이루어졌거나, 최근 더욱 가속화되는 양상이다. 출판업계 역시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전자책 시장은 해마다 조금씩이나마 영역을 넓혀가는 것처럼 보이며(물론 종이책 시장과 전자책 시장에서 주로 구매되는 상품의 성격이 달라, 전자책 시장의 성장은 예상보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지금은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서점업 자체도 언젠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읽은 것은 책을 매개로 한 따뜻함보다, 오히려 아직 답이 정해지지 않은 질문과 고민거리를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짧은 감상평>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책'이라는 사물을 통해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통해, 뭉클하고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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