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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싶은 '문학'/영미소설

[책리뷰] 킨(옥타비아 버틀러 著)

Geronimo 2021. 8. 17. 07:10

킨(Kindred) | 옥타비아 버틀러(지은이) | 비채


개인적으로 SF 소설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큰마음을 먹고 구매했던 SF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1권도 다 읽지 못한 채 책장 한 구석을 장식하고 있다. 대중적인 과학 교양서 「코스모스」를 읽고 칼 세이건이라는 작가에 관심이 생겨 그의 SF 소설 「콘택트」도 읽어보려 했지만, 내 기억이 맞는다면 100페이지 정도만 읽은 채 다른 작가의 책으로 관심을 옮겼다. 책을 끝까지 보려는 내 의지가 부족했던 것인지 아니면 SF라는 주제가 내 취향과 맞지 않는 것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킨」을 구매했던 이유는 단 하나, 리커버 에디션이었기 때문이다.

리커버 에디션은 정말 신기하다. 사람의 소장 욕구를 이만큼 자극하는 상품이 또 있을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옥타비아 버틀러라는 작가의 책을 구매하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킨」을 1년 넘도록 책장에 장식용으로 둔 채 한 페이지도 읽지 않았다. 그만큼 SF 소설이라는 장르가 최근까지도 나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 같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을 찾고 있는 와중에, 책장에서 공간만 차지하던 「킨」이 눈에 들어왔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책 자체가 아담하게 제작되어 있어서 읽는 데에 큰 부담은 없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극적인 요소가 더해져 몰입도도 높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해보면, 왜 이 책의 리커버 에디션이 나오게 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킨」을 꿰뚫고 있는 기법은 시간여행이다. 1976년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여주인공 다나는 돌연 현기증을 느끼며 1819년 미국 남부 메릴랜드로 한 세기를 뛰어넘는 시간여행을 하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메릴랜드는 남부 전쟁이 일어나기 전이었고, 심지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가 만연한 곳이었다. 다나는 그곳에서 만난 농장주의 아들 루퍼스 와일린이 그녀의 먼 조상임을 알게 되고, 루퍼스가 죽을 만큼 심한 고통을 느낄 때 그녀가 시간여행을 하게 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 역시 죽을 만큼 심한 고통을 겪을 때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이 시간여행이 다나의 의도와 무관하게 반복되자, 그녀는 노예로서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그녀의 조상에게 흑인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일종의 보험이자 도박을 감행한다. 이후 시간여행에 대한 다나와 루퍼스의 관점 차이에서 이 둘은 갈등을 겪게 되고, 그 갈등과 연계된 사건들이 소설 「킨」의 전반적인 흐름을 구성한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가 없는 시대에서 과거로 건너온 주인공 다나가 마주하는 여러 딜레마, 그리고 루퍼스와 그녀의 갈등이 고조되는 흐름은 「킨」의 몰입도를 높인다. 다나가 다소 답답해 보이는 장면도 있지만, 그녀와 시간여행으로 연결된 루퍼스 역시 답답한 모습을 보이기에 의외로 서로 상쇄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라는 다소 강렬한 표현과 함께 시작되는 책의 서두와 잘 어울리는 결말도 맘에 든다.

인터넷 서점에서 「킨」은 SF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은 SF와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시간여행이라는 기법을 책에서 사용해서일까? 시간여행은 다른 소설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주제임을 고려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저자 옥타비아 버틀러의 작품 대부분이 SF 소설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 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킨」이 그녀의 작풍의 연장선으로써 SF 소설이 맞는지 아니면 진짜 특정 기준을 충족하여 SF 소설로 분류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킨」은 단순한 영미소설로 보인다. 하지만 19세기 미국에서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던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과 노예제도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미국의 역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음과 동시에 사회문제에 대하여 과감하게 질문을 던진다. 미국에서 인종차별이 법으로 금지된 것이 1960년대 후반이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붕괴된 것이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옥타비아 버틀러가 「킨」을 미국에서 출간한 시기가 1979년이니, 다소 민감하고 많은 사람이 쉬쉬할 수 있는 주제를 「킨」에 잘 녹여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소설의 원제인 킨드레드(Kindred)는 친척, 혈연관계를 뜻한다. 제목은 다나와 루퍼스가 서로 혈연관계임을 내포하고 있지만, 그 이상으로 미국인 전체가 계급, 인종과 무관하게 하나의 혈연관계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와는 별개로 국내에서 이 책의 제목을 굳이 축약어 또는 구식 표현인 '킨'으로 했는지는,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짧은 감상평>
「킨」은 SF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사실 SF의 요소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대신 권력, 인종과 연결된 불평등에 대하여 옥타비아 버틀러는 「킨」을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자유, 평등의 의미와 그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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