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데우스(Homo Deus) : <6> 근대의 계약
호모 데우스(Homo Deus) - 미래의 역사 | 유발 하라리(지은이) | 김영사
<목차>
프롤로그 : 1) 인류의 새로운 의제
제1부 : 호모 사피엔스 세계를 정복하다
2) 인류세
3) 인간의 광휘
제2부 : 호모 사피엔스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다
4) 스토리텔러
5) 뜻밖의 한 쌍
6) 근대의 계약
7) 인본주의 혁명
제3부 : 호모 사피엔스 지배력을 잃다
8) 실험실의 시한폭탄
9) 중대한 분리
10) 의식의 바다
11) 데이터교
ㅇ 근대 이후 인류는 힘을 가지는 대가로 의미를 포기하는 데 동의하는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 근대 이전까지 인류는 전능한 신, 영구불변의 자연법칙이 구성한 큰 계획 아래 하나의 역할을 맡는다고 믿었다.
- 이 계획은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였지만, 때로 인간의 힘을 제약하기도 했다. 따라서 인간은 힘을 포기하는 대가로, 자신들의 삶이 의미를 얻는다고 믿었다.
- 하지만 근대 이후의 문화는 장대한 우주적 계획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간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는 없으며, 그 의미조차도 정체가 모호하다.
- 결국 인류는 능력만 있다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행여 이에 대한 제약, 구속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무지'뿐일 것이다.
- 근대의 계약은 인류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 끊임없이 힘을 추구하여 전능함을 쥘 수도 있지만, 반대로 무의미한 삶 속에서 존재론적 불안을 과거보다 더 심하게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ㅇ 힘을 추구하기 위한 원동력은 과학의 진보와 경제성장이었다.
- 근대 이전에도 과학적 발견은 있었고 경제도 성장했지만, 그 속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느렸다. 따라서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키거나 사회적, 정치적 질서를 바꾸기에는 부족했다.
- 더불어 성장은 우리의 육감, 진화적 유산,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등과 모순되어서, 성장이라는 개념은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에게 아예 없거나 적어도 친숙하지 않았다.
-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미래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신용거래의 규모가 커지면서, 반복되는 경제적 정체의 악순환은 깨지고 경제성장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ㅇ 근대 이후의 사회는 경제성장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 성장을 믿기 어려웠던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인간은 세계를 고정된 파이로 보는 데 익숙했다. 누군가가 많이 가져가면, 다른 누군가는 적게 가져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자명해 보였다.
- 전통 종교들은 기존의 파이를 재분배하거나, 미래의 파이를 약속하는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
- 하지만 근대 이후의 사회는 파이의 크기를 키워서 많이 가지는 것을 주된 방향으로 택했다. 그리고 그 근본은 경제성장이라 말한다.
- 정치인과 경제학자들은 오늘날 경제성장이 필요한 주된 이유로 3가지를 꼽는다.
(1) 더 많이 생산하면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고, 그 결과 삶이 윤택해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2) 앞으로 인구가 늘어난다는 가정하에, 현재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3) 균등한 분배를 위해 취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 반발, 폭력 사태 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필수다.
- 근래에는 경제성장이 종교, 이념 등을 포함해 공적, 사적 영역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자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열쇠로 바뀌었다.
- 심지어 경제성장이 인류가 당면한 윤리적 딜레마의 많은 부분을 해결해주는 것처럼 보이기에,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종교라 일컬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 윤리적 의견 불일치와 무관하게 장기적 성장을 최대화하는 행동 방침이 오늘날에는 중요시되고 있으며, 경제성장에 방해가 되는 사회구조, 전통 가치 등은 해체 또는 파괴될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 자본주의는 현실에서의 보상과 인간 사회의 관용과 협력을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ㅇ 그렇다면 앞으로 경제가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 과거 새로운 땅을 탐험하고 정복하면서 경제가 성장했지만, 이 방법은 제약과 한계가 있다.
- 과학혁명이 무지를 발견함으로써 인류는 순진한 확신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지식을 찾아 나설 수 있는 타당한 이유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진보로 이어졌다.
- 원재료, 에너지는 사용할수록 그 양이 줄어들지만, 지식은 사용할수록 늘어나며 성장한다.
- 지식이 늘어날수록 새로운 원재료와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활용함으로써 경제는 계속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ㅇ 과학 기술이 자원의 희소성 문제를 극복할 기회를 만들어줄 수 있지만, 우리는 생태계 붕괴를 장기적 측면에서 염려해야 한다.
- 생태계 붕괴는 인간 문명의 존재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 더 빨리 성장하여 위협을 없앨 수 있는 자구책을 발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성장의 속도를 늦추어 '과학 진보와 경제성장'과 생태적 아마겟돈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것이다.
- 속도는 앞으로 더 빨라질 것이 분명하기에, 실수해도 될 여지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생태계의 파국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계급마다 다를 것이라는 점도 우리는 걱정해야 한다.
ㅇ 행여 균형점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부차적 문제들은 남는다.
- 개인 측면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려,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와 긴장이 생긴다.
- 사회, 정치 제도, 시스템 등의 집단 수준에서는 혼돈과 격변이 계속된다.
- 이에 현대 사회는 성장을 지고의 가치로 떠받들고, 우리는 이를 위해 모든 희생과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을 주입하고 있다.
-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탐욕과 혼돈의 시스템을 신성화하여 우리의 불안을 상당 부분 달래주었다.
(p.299) 2015년 12월 파리협정에서는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1.5도 이상은 높이지 말자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이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필요한 고통스러운 단계들 가운데 다수를 편리하게도 2030년 뒤, 심지어 21세기 후반으로 미뤘다. 이는 사실상 뜨거운 감자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 것이다.
(p.301)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경제가 성장할 때만 개선된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현재의 경제성장을 둔화시켜 미래의 생태적 위협을 줄이는 조치를 지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무척 멋진 생각이지만, 집세도 못 내는 사람들에게는 녹아내리는 만년설보다 자신들의 마이너스 통장이 훨씬 더 큰 걱정거리이다.
(p.303) 파이의 크기가 고정되어 있던 때에는 사회 화합을 위해 욕심, 욕망을 제어해야 했다. 그런데 근대에 와서 세계가 거꾸로 뒤집혔다. 근대는 인간집단에게 평형 상태가 혼돈보다 훨씬 더 무섭고, 탐욕은 성장의 원동력이므로 선한 힘이라는 확신을 불어넣었다.